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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 약을 지어 주다 |
부산하게 오고가는 학생들과 연인들이 첫눈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는 11월 하순의 들 뜬 거리 분위기하고는 정반대로 ‘나사로약국’은 마지막 잎새의 운명에 처해 있는 것 같았다. 지하철역과 통로가 연결되어 있는 L백화점 지하 1층 한쪽 코너에서 7년간 영업을 해 오던 현재영 약국장님. 백화점측과 임대차 계약 만료시점은 11월 말일인데 최근 급격한 매출 저하로 사업의욕이 꺽여 임대차 계약을 갱신해서 계속해 볼까 아니면 문 닫을까 고민 중이라고 털어 놓았다.
우리 회사의 민감성 피부를 위한 약국용 화장품을 판매한 지 5년. 내가 담당한 지도 벌써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서로 척하면 척하고 알아듣고, 나로서는 거래관계를 뛰어넘어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터 놓고 지내는 관계인데 약국 문을 닫는 지경까지 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니 큰 행님, 와 이라십니꺼? 요즘 약국들 처지가 거의 비슷한 거 잘 알믄서… 그나마 행님네는 집객력 빵빵한 백화점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게 남들보다 엄치기 안정적이지예. 마, 이만한 목도 찾아 보기 힘들껍니데이. 아니 없심더 업시예. 이 마당에 어데가서 약방을 열겠다카심니꺼.”
나는 터놓고 호형호제하고 지내는 현재영 약국장님의 고민이 일시적인 의욕상실 탓이라고 판단해서 힘을 내서 해보자고 야단치듯 설득했다.
“이랄게 아니제. 큰 행님 제가 백화점 쪽에다가 말 좀 해 보겠심더.”
“자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여.”
“걍, 두고만 보이소 마. 내 누군데예.”
우리는 이 백화점이 개점할 때부터 시판용 화장품 매장을 열어 매년 매출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백화점 측과의 사이가 좋았고, 나도 이 백화점을 3년이나 관리하다 보니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런 우리의 비즈니스 네트웍 파워를 이용해서 현재영 약국장님이 위기로 생각하는 고민을 해결해 드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일단 우리 매장을 담당하고 있는 바이어의 협조를 얻어 백화점 임대계약 담당직원를 소개 받았다. 그 직원에게 나사로약국의 고민거리를 설명하고 나서, 약국의 입점위치를 내방고들의 주동선에서 가깝고 노출이 잘 되는 장소로 옮기는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하는 것을 관철시켰다.
현재영 약국장님께는 ‘약국 문 닫을 생각 같은 건 접으시고, 이런 때에 오히려 과감해 질 필요가 있으니 투자를 해서라도 자리를 옮겨 다시 해 보자’고 설득했다.
“그래, 자네 덕에 자리도 좋은 데로 옮겼고 했으니 이제 마음 고쳐 먹고 새 출발해야지.”
나는 그 대가로 약국의 위치를 옮기면서 우리 제품의 진열공간을 1/4에서 1/2로 확대시켰고, 약국 이전을 계기로 경쟁사 제품은 아예 철수시키게 되었다. 이전에 월 700만원이었던 매출액이 약국을 이전한 후에는 월 1,500만원 수준으로 올라 현재영 약국장님은 예전의 미소를 되찾았다. 그 후 나사로약국의 약국용 화장품이 전적으로 나한테 맡겨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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