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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점심식사 후 3시간 넘게 중역회의실에서 부천2공장 라인증설 준비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 갔더니 모두들 회의용 테이블에 모여 무엇을 먹고 있었다. 오전에 회의준비로 긴장하던 분위기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왁자지껄 떠들썩하였다.
“어, 팀장님. 떡 좀 드세요.”
신바람 과장이 오물거리던 입을 손으로 가리며 나를 불렀다. 다른 팀원들도 입안 가득 떡을 물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왠 떡?”
“팀장님.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H중공업 발전기사업부 영업팀의 원만해 대리다.
“팀장님, H중공업의 원 대리님이 신혼여행 다녀왔다면서 떡을 해가지고 왔어요.”
우리 팀 마스코트 얌전이 주임이 옆에 서 있다가 원 대리를 힐끗 쳐다 보고 나서 지금 회의용 테이블의 상황을 알 수 있도록 짤막하게 설명해 주었다.
“팀장님. 제가 장가를 갔습니다. 팀장님께 신고 드리려고 왔습니다. 떡 좀 드세요.”
항상 웃는 얼굴에 넉살 좋은 원 대리가 나한테 또 꾸뻑 절을 했다.
난 떡을 싫어한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우리 어머니께서 떡을 좋아하셔서 기억이 있을 때부터 떡을 많이 먹었던 나였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주니까 먹지 않았던가, 선택의 여지 없이.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어 보았기 때문에 이젠 질려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떡이 딱히 맛있다는 걸 모르겠다. 떡을 쌀로 만든 과자라고 생각하기에는 과자답지 않게 생각되었다. 과자라고 하면 좀더 가공이 되고 달콤하고 이런저런 모양에 또 맛나 보이는 포장이 쌓여 있어야 먹고 싶은 생각이 들 터인데 그냥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떡은 밥이 질게 되어 ‘떡밥’이 된 거나 다름없어 보이는 게 먹음직해 보이지 않는다.
“어, 그래? 축하해 원 대리. 장가 가더니 얼굴이 더 좋아 진 것 같애.”
“감사합니다, 팀장님. 이 떡 드세요.”
원 대리가 집어 주는 떡을 입에 넣고 오물 거렸다.
“팀장님, 군대에서 휴가 복귀할 때 떡을 해가는 건 있어도 결혼했다고 거래 업체에 떡 해가지고 오는 건 처음 봅니다. 이 친구 참.”
우리 팀 대리 중에 고참 대리인 나서면 대리가 원 대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오래된후배에게 하는 제스처가 보기에 좋아 보였다. 나 대리가 납품업체 영업사원한테 이렇게 정감 어린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발전기를 납품하는 모든 업체의 영업사원들이 나 대리를 거쳐야 납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원 대리한테는 나 대리가 어려운 상대다. 나 대리는 납품업체 영업사원과는 팽팽한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편이기 때문이다.
“이 떡 참 맛있네요. 이 시간쯤이면 뭐 좀 먹고 싶었는데. 원 대리님, 언니 이뻐요?”
“아예 사진 보여 드릴께요?”
“어머, 어디 좀 봐요.”
돌아가는 이야기가 H중공업 원 대리가 마치 우리 회사의 다른 팀 직원인 것 같았다.
원 대리의 떡 탓일까?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자꾸 어머님이 생각났다. 어머님은 떡을 참 좋아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설기, 노란 콩가루에 버무린 쫄깃한 인절미며, 기다란 가래떡, 기름이 반지르 흐르는 바람떡, 팥떡, 절편… 떡이라고 하면 이름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셨고 또 잘 드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장가 들어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된 후에도 어머님께 떡을 사드린 적이 없는 게 아닌가. 어머님께서 떡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잊고 살아 온 내 무관심.
(내가 팀장이면 뭐하나.)
지금은 틀니를 하셨기 때문에 찰진 떡을 잘 못 드신다는 생각이 나자 가슴 한쪽이 아리기 시작했다. 한 손에 떡을 들고 큰 웃음을 웃고 계시는 어머님의 주름 패인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래.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님을 뵈러 가자. 집사람한테 씹는 맛이 좋은 떡 좀 사놓으라고 해야지.)
퇴근할 무렵. 신 과장과 나 대리를 내 자리로 불렀다.
“H중공업의 원 대리말이야. 그 친구 참 대단해. 몇 년 째 우리를 찾아 왔지?”
“2년이 넘습니다.”
“그래? 그래, 2년 동안 우리랑 거래가 한 건도 없는데 끈덕지게 찾아 왔구만.”
“네. H중공업은 아직 저희 지명입찰 자격에 미달이거든요. PP3급 단독 턴키 납품 실적이 좀 모자랍니다.”
“그렇지만, 부천2공장 라인증설 프로젝트는 턴키 방식이 아니잖아?”
“그렇죠.”
“네, 맞습니다.”
신 과장과 나 대리도 내 생각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이번 건 지명입찰에 끼워 줘봐. 견적은 그 친구 실력에 달렸고, 심사야 뭐 2공장에서 할꺼니까… 2년 동안 한 번도 기회를 안 준 건 너무 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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