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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정보를 제대로 |
두번째로 방문하는 그 병원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병원 건물을 올려다 보니 평범하게 생긴 그 간호사가 한 말이 내 가슴 속에 찡하게 울려 퍼졌다.
1년 전에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 났고,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 하나 바라 보고 산다는 그녀. 그 아들이 얼마 전에 ‘난 아빠도 없는데 엄마마저 죽으면 난 어떻하지?’라고 던진 말에 겁이 나서 종신보험을 가입하려 했다는 그녀. ‘아드님께 보장은 얼마 정도해 드리고 싶으세요?’라는 내 질문에, 장난끼 섞인 표정으로 ‘많이요’라고만 대답했던 그 상담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이렇게 가슴이 시린 게 여간 아픈 게 아니다.
“아니… 많이라고 하시면…”
“네, 그냥 많이요.”
“그래도 금액을 말씀하셔야지요.”
“네, 많이요.”
처음 그녀를 만나러 갈 때, 천사 같은 간호사 이미지를 그려 보았다. 간호사라고 하면 나이팅 게일을 떠 올리고, 나이팅 게일의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나이팅 게일이 천사처럼 아름다운 모습일 거라고 막연하게 상상하는 것처럼.
약속시간 전에 도착해서 그녀를 20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1층 로비에 그녀가 나타나는 모습은 천사도 아니고 나이팅 게일도 아니었다. 그냥 아줌마였다. 작은 키에 통통한 체구. 뒤뚱거리며 걷는 걸음.
그녀는 병원 방문객이나 수납 대기자들이 앉을 수 있는 커피 전문점 수준의 1층 로비 테이블을 피해 복도를 두 번 돌아 방사선과 앞 쇼파로 나를 데리고 갔었다.
“사람들이 보면 좀 그래서요…”
조금 얼어 있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서 혼자서 아들을 어렵게 키우고 있는 미망인의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보장금액을 결정하기 위해서 그녀의 재정 상태를 물어 보았다. 남편이 남긴 재산은 탈탈 털어 봐야 지금 언니네 아파트에서 같이 살면서 낸 전세금 8천만원이 고작인 것 같았다. 그녀가 간호사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에 아들의 장래가 달려 있는데 그 금액도 의외로 적었다. 집은 일산인데 병원은 산본. 출퇴근은 경차로 하는데 운전 실력은 서툴고, 심신이 지친 퇴근길이나, 근무교대 후 밤이나 새벽에 운전할 때에는 겁이 난다고… 그래서 아들이 ‘엄마마저 죽으면 난 어떡해’라는 말이 항상 가슴에 걸렸다고…
그런 그녀가 종신보험을 나한테 가입했다. 내 고객이 된 것이다.
오늘은 보험증권을 전달하려 찾아 왔다. 보험증권을 전달할 때 여성 고객에게는 꽃다발을 선물로 준비했었지만 그녀에게는 왠지 이상할 것 같아 손목시계를 준비했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한테 꽃다발을 선물한다는 게 좀 그랬다.
처음 상담을 할 때보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두번째 만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에 비해 좀 무리한 보장을 설계해서 건강진단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 결과가 좋아 보험계약이 성립되었기 때문일까?
전에는 한적을 곳에서 상담하기를 원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사람들이 많은 1층 로비 테이블에 그냥 앉았다.
건강진단 결과가 좋았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환해졌다. 이제 자신이 죽더라도 아들의 교육비나 양육비 따위의 돈 걱정은 없어진 것에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보험증권철을 꺼내 하나 하나 다시 설명해 주었다.
설명이 다 끝나자 그녀는 나한테 잘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저어.. 이건 제 고객이 되신 것을 기념하는 작은 선물입니다.”
“아니, 뭐 이런 걸 다…”
“부담스러워 하지 마시고 받아 주세요.”
“아, 네에…”
“그런데, 아드님은 학교 잘 다니시겠죠?”
그녀의 아들은 뚱뚱하다고 했었다. 남편을 닮았는지 심장도 약하고, 그래서 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녀에게 아들의 건강을 물어 관심을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화제를 돌렸다. 내가 준 선물에 대해 그녀가 부담스럽게 생각한 여유를 주지 않을 겸해서.
“아, 네에…”
그녀의 대답이 좀 어색하고 거북해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절부절하는 것도 같았고. 그녀가 로비의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 보았다. 시간이 다급한 모양이었다.
“병동으로 빨리 가 보셔야 하나요?”
“아뇨. 퇴근시간 때문에…”
“네? 오늘 야간근무조라고 하셨잖아요? 저한테 5시 반에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교대를 바꿨어요.”
“왜요?”
“오늘이 우리 아들 생일이라서 저녁을 외식시켜 주려구요.”
‘헉!’
순간 머리가 멍멍해졌다. 누가 내 뒤통수를 큰 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내려 그녀가 싸인했던 청약서 사본을 내려다 보았다.
그녀의 아들 주민등록번호를 찾아냈다.
내가 받아 적은 수익자의 생년월일…
바로 오늘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보험증권철을 덮어 옆으로 치우다가 테이블 위에 놓아둔 내 휴대폰을 떨어 뜨리고 말았다. 대리석 바닥에 곤두박질 친 휴대폰은 밧데리가 분리되어 두 동강이 났다.
꽃다발도 아니었고, 예쁜 여성용 손목시계도 아니었다. 오늘 내가 들고 왔어야 하는 건 내 고객, 보험수익자, 그녀의 하나 밖에 없는 뚱뚱한 아들에게 전해 줄 생일선물이었다.
떨어진 내 휴대폰을 줍기 위해서 허리를 굽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싫어졌다.
고객의 정보를 제대로 읽지 못한 내가 영업을 한다고, 고객을 감동시킨다고 주접을 떨고 있다니…
“어…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아드님 생일을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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