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뺀질이의 DM |
아침부터 배 불뚝이 반토막 SM이 똥집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 좀 하자고 한다.
우리 팀원들이 회의실에 다 모였다, 뺀질이만 빼고.
“엉? 이 새끼 어디 갔어?”
“또 지각인가?”
“현지 출근한 모양죠, 뭐.”
“그 녀석, 오던 말던 뭔 상관입니까.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난 신경 안 써. SM님 왠 회의입니까?”
팀원들이 한 마디씩 한 건 뺀질이가 회의실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항상 그랬다. 회의하자고 하면 자기는 고객하고 만날 약속이 있다고 나가기도 하고, 팀 학습시간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팀 학습시간을 위해서 고객과 약속을 조정해서 복귀 시간을 앞 당기면 뺀질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객을 만난다는 그 이유 하나로 난장이 똥자루 SM은 그 녀석의 뺀질 뺀질한 행태를 눈감아 주었다.
SM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뺀질이 녀석의 성공담을 팀원들에게 알려 주려는 것이었다.
SM은 금연구역인 회의실에서 담배를 꼬나 물었다.
“다들 한 대 피우면서 편하게 얘기하자구요.”
회의실에서 만큼은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던 SM이 회의 시간에 그것도 거국적으로 담배를 피우자고 하는 걸 보면 지금 기분이 째지는 모양이다.
SM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뱉으며 꺼낸 이야기는 뺀질이가 낚았다는 월납 보험료 액수였다. 어젯밤에, 뺀질이가 또 큰 건을 터트렸단다. 월납 보험료가 10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종신보험만 그렇고, 개인연금은 월납 5백만원, 7년납이라고 한다.
이어서 SM은 우리한테 뺀질이가 받게 되는 수당을 계산해 주었다. 우리 보고 자극 좀 받으라고 그러는 모양인데, 뺀질이가 잘 나간다는 말에 은근히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놈은 다음 달에 받을 수당이 천 만원이 넘는다.
뺀질이가 어떻게 해서 그 큰 건을 건졌는지는 얘기를 듣지 않아도 뻔했다. DM을 보냈단다. 건설회사 주소록을 어디서 구해다가 100명의 사장들한테 A4 두 장 분량의 개인연금 안내문을 보냈는데 그 중에서 몇 명한테 전화가 왔다고 한다. 와서 자세한 설명 좀 해 달라고…
SM이 보여 준 뺀질이의 설명 자료는 허접 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금리 시대에 저축과 개인연금을 비교해 놓은 것에 불과했다. 그걸 보고서 상담을 요청한 건설회사 사장들이나, 찾아 가서 침 튀겨 가며 ‘설’을 풀어 청약을 받아 낸 뺀질이나 한심해 보였다. 뺀질이의 자료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다. 최저 3% 금리 보장이라는 부분은 감추고 현재 금리가 6.5%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누가 보아도 은행 금리보다 높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7년 이상 납입하는 조건이라서 몇 년 후에 6.5%가 유지되지 않고 낮아진다면? 고객이 그걸 짚고 넘어가지 않았을 리 없었겠지만, 그래도 최저 금리가 3%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정보를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게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 정보야 말로 불리한 정보이고 상품의 약점이니까 그걸 적극 숨긴 것은 정말 뺀질이다운 상술이었다.
뺀질이 녀석이 싫으니까 뺀질이가 만들 자료도 싫어진다. 더군다나 고객의 재정안정을 위한 설계 노하우나 설득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뺀질이가 얼마 짜리 계약을 따왔고, 수당을 얼마 받게 된다는 점만 강조하고 있는 SM의 개기름이 잘잘 흐르는 마빡을 보고 있자니 자꾸 뺀질뺀질이라는 말이 활짝 웃는 SM의 미소마저 역겨워졌다.
‘저게, 돈 맛에 미쳤군…’
점심 밥맛이 영 아니었다. 그 밥맛에 뺀질이 반찬이 입맛을 버려 버렸다. 다른 동료들이 계속 뺀질이가 어쩌구 저쩌구하면서 밥알 씹듯이 뺀질이의 이름을 씹어 댔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종일 배알이 꼬였다. 뺀질이는 잘 나가는데 나는 오늘 만날 고객이 없다. 내일, 다음 중에 만날 고객을 찾아 보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봤지만 주간 일정표에 적힌 이름이 몇 명 안되고…
아침부터 재수없는 뺀질이 얘기 때문에 일진이 엉망이 된 것 같아 뺀질이가 더 싫어진다.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선배한테 좀 일찍 퇴근해서 소주 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이럴 땐 소주가 약이다.
헤질 무렵 나 혼자 지하 학사주점에 앉아 벌써 한 병을 깠다. 선배가 뒤따라 나오기로 했는데 좀 늦었다. 이 선배는 항상 굼떴다.
‘그러니까 실적이 그 모양이지…’
내가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시고 나서 소주병을 들고 아줌마한테 ‘여기 한 병 더요’를 외칠 때 선배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나타났다.
“야~ 신나는 빅 뉴스가 있는데 얘기해줘 말어.”
“뭔데 그래요, 선배. 뭔데 그렇게 좋아해?”
소주 잔을 받아 들고서 계속 키득대다가 선배가 들려 준 얘기는
“야, 뺀질이 말이야… 어제 고액 계약한 건, 청약서 잃어버렸데. 크크크.”
“뭐라구요? 으하하하. 그 새끼. 푸하하하. 그래서 하루 종일 안 보였구만. 크하하하.”
“SM 말이야. 얼굴이 파래졌어.”
“네? 으하하하. 푸하하하. 선배! 자, 건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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