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보병 만세! |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아는 국내 굴지의 모 중공업 인사과장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이다.
입사했을 때 연수과정 중에 계열회사에서 나와서 직장인으로서 알아야 할 재테크에 대해 교육을 해 주면서 그에 곁들여 보험상품을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주변의 동기생들이 하나 둘씩 가입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가입을 했고,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10년이 되도록 연체 없이 보험료를 냈다고 했다.
그 보험회사의 고객관리 시스템은 훌륭하였다. 고객의 보장기간이 끝나기 전에, FC로 하여금 그 사실을 고객에게 알려 주고 새로 가입을 권장하도록 CRM이 멋들어지게 가동되었던 것이다. 물론 10년 전의 그 FC는 온데간데 없이 낯선 FC가 전화를 걸어 왔으렸다.
이제는 가장이 된 지 오래고, 아이들도 쑥쑥 커가고 있는데 ‘보장이 다음 달로 끝난다’는 말에 얼마나 겁이 났을까. 그 FC한테 빨리 와 달라고 재촉을 했는데, 막상 FC가 찾아 와서 내 놓는 보험상품은 10년 전 보험료의 10배가 넘었다. 그의 말로는 ‘보험료가 일이십 만원도 아니고…’라고 했다. 섣불리 가입을 결정하지 못하고 FC를 돌려 보냈다.
그의 구매 방식도 10년 전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주변에서 가입한다고 덜컹 따라서 가입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뒤졌다. 좀 유명하다는 보험회사의 사이트를 뒤져 상담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FC들이 총알처럼 연락이 오더란다. 그 중에서 P사의 LP를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만나 보니 정말 확! 깨더란다.
보험 이야기는 안하고 이런저런 살아온, 또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30분도 안되어 P사의 회사 안내서만 남겨 놓고 가더란다. 언제 다시 오겠노라고, 그때는 당신 가정의 재정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하자고. 가족회사나 나름 없는 계열사 보험회사에서 온 FC는 초면에 다짜고짜 미리 프린트해 온 보험설계서 두 세 가지를 내 보이면서 어떤 걸로 하겠냐고 푸시를 해 대던데, 이 P사의 LP는 한 달 보험료가 몇 십 만원 하는 보험에 가입하려면 고민이 필요하다며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여유로운 초면 이미지가 산뜻한 충격이었다고.
결국 P사의 LP한테 종신보험을 가입하게 되었다고. 영업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에 아무리 같은 그룹에 있는 계열사 직원이라 같은 편이라지만 고액을 지출해야 하는 가장의 고민 따위는 다독여 주지 않고 어떤 걸 사겠냐고 몰아 붙인 건 너무 심했다는 핀잔, 너무 쉬운 존재로 취급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아무리 훌륭한 CRM도, 마지막에 깃발을 꽂는 보병의 각개전투술이 시원치 않으면 장롱 속 깊이 감추어져 있는 비싼 보석에 불과하다. 보석은 빛이 비추어야 빛을 발하는데 말이다. 사자성어로 무용지물이라고나 할까. 보병 만세다, 만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