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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출 10만원을 400만원으로 |
이 고객을 인수 받은 지 3개월이 지났을 쯤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인계를해 준 전임자의 말대로 한 달에 한 두 방문해 왔는데 이렇게 잠재력이 큰 헤어 살롱이 왜 월 10만원 정도만 주문할까… 전임자가 인계해 줄 때 한 말은, 월 10만원 밖에 안 파는 가게니까 너무 신경 많이 쓰다 보면 다른 고객을 관리할 시간을 빼앗겨 실적에 도움이 안될 테니까 이 고객한테는 적당히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세 달 동안 눈 여겨 보니까 이 살롱은 내 계산대로 라면 어림잡아 월 700만원. 그런데 우리 제품은 겨우 10만원?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그 동안 나조차 원장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는 사실. 이 살롱을 방문할 때마다 만난 사람은 매니저 단 한 명뿐. 매달 정산을 할 때마다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치도 우리 제품의 매출 규모만큼 이나 하찮게 보듯 했다. 그와 나눈 이야기도 얼마 팔았다, 결재랄 것도 없는 금액을 언제까지 입금하겠다는 둥의 거래 내역에 관한 것이 고작이었다.
한 번은 다른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원장님은 무슨 일로 바쁘시길래 한 번도 만날 수가 없는 것인지, 이 살롱에서는 한 달에 모발 염색제를 얼마나 쓰는지, 염색제 구매는 누가 결정하는지, 경쟁사의 염색제는 뭐가 좋아서 그렇게 많이 쓰고 있는지 등등. 그리고 직원들, 단골 손님들의 계층과 성향에 대해서도.
“유 실장님, 오늘은 제가 몇 가지 여쭈어 볼 게 있는데 시간 좀 내 주시겠어요?”
“어? 왜?”
“아, 네. 제가 이 살롱을 맡은 지 세 달이 지났는데, 궁금한 게 많아서요. 저는 이 살롱 담당으로서 애정이 많이 생겼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 해 보려고 하는데, 실장님께서 좀 도와 주세요?”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나. 난 매니전데, 염색약은 헤어디자이너가 골라요. 난 장부 정리나 해.”
(그랬었군… )
어떤 염색약을 쓸 건지 결정하는 사람은 원장님도, 매니저도 아니었다.
(그런데 디자이너는 누구지?)
그날 매니저는 내가 디자이너와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소개해 주었다. 꽁지 머리를 하고 매우 여성스러운 제스처를 자주 쓰는 그 수석 헤어디자이너는 나이가 나하고 비슷해 보였다. 그는 내가 한 달에 한 두 번 올 때마다 내 얼굴을 봤는데 인사도 없고 해서 좀 서먹서먹했었다고, 다른 염색제 회사 영업사원은 술도 같이 마시고 지낸다고, 이제라도 인사를 나누게 되어 반갑다고 말했다.
“그러세요? 그럼 직원분들 회식하실 때나 그럴 때 저도 좀 붙여 주세요. 2차 생맥주는 제가 살께요.”
“술 잘 하시나봐요.”
“그냥… 분위기 죽이지는 않죠.”
몇 일 후 수석 디자이너가 자기 밑에 있는 디자이너들 하고 소주 파티를 하니까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전화를 걸어 왔다.
디자이너들과 함께 저녁 겸 소주 파티 그리고 생맥주로 입가심하면서 보낸 밤의 4시간은 나한테는 4개월 동안 영업한 것 이상의 정보를 얻었다. 나한테 직접적으로 ‘이렇다’하고 정보를 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 속에서 원장님의 성격, 경영스타일, 사업력, 영향력 등을 알게 되었고, 염색제는 수석 디자이너가 결정하지만 돈 관계는 원장님께서 직접 챙기는데, 원장님은 주변의 경쟁 살롱 뿐만 아니라 강남 쪽에서 잘 나간다는 살롱들의 움직임에 대해도 관심이 많다는 것, 직원들의 근태관리는 매니저가 맡지만 제품 사용 방법이나 디자인 계통은 수석 디자이너가 전적으로 좌우한다는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정보는 윈디 웨이브사 염색제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아 곧 재주문을 해야 하는데 한때는 문지방 닳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들락거리던 그 쪽 영업사원이 다른 살롱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 최근에는 얼굴 도장을 덜 찍어 신뢰가 하한가로 떨어졌다는…
다음 날 아침. 숙취로 터질 것만 같은 머리를 쥐어 짜며 우리 팀장님과 합의한 작전은...
팀장님과 함께 방문해서 매니저와 수석 디자이너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우선 우리의 스타 브랜드인 ‘칼라 존’ 시리즈를 런칭하는 것을 제안한다. 또 모든 팀원에게 명동, 강남 일대 Top 10 살롱의 동향을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한다. 살롱의 매니저에게 원장님과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고, 원장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가 정리한 정보를 설명해 드린다.
팀장님께서 도와주신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때 마침 원장님께서는 강남에 2호점 개설을 구상 중이었다. 우리가 드린 정보는 원장님께서 바라던 바로 그것이었다. 염색약을 얼마 더 싸게 주겠다는 제안보다 더 반가워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그 살롱에서 월말에 입금한 결제대금은 400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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