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말일에 내린 비 |
4월 30일 금요일. 아침부터 가는 비.
임원회의실에서 간부회의를 마치고 오신 팀장님께서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변 과장, 그거 있잖아… 크레인 모터 교체건. 빨리 서둘러야 되겠어.”
“네? 무슨 말씀…”
“응, 사장님께서 크레인 모터를 전부 점검해서 교체할 게 있으면 얼마가 들든지 간에 다 교체하래, 5월말까지.”
“네? 왜 그렇게 서두르죠?”
“작년 장마철 기억 안나? 모터 때문에 생고생했었잖아?”
“아니, 그때 다 수리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나도 아는데, 수리수주팀에서 이번에 큰 건을 낚아 왔는데 납기를 짧게 받았나봐. 그래서 작년 같은 일이 또 일어나서 납기가 늦어지면 우리가 지체배상금을 엄청 물게 된데. 그러니까 빨리 모터 업체에 연락해서 견적을 받으라구, 다음 주에 결정해서 보고해야 돼.”
(이런… 월말에 일 벼락 맞았군, 어린이날까지 좀 느긋하게 쉴까 했더니만. 하필이면…)
풀파워사의 남 과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급한데 좀 들어와 줄 수 있느냐 물었더니 월말이라서 바쁘니 다음 주 월요일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FP사는 우리 크레인에 달린 모터를 납품했던 회사라서 우리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남 과장은 그걸 강조하면서 말일이니까, 비도 오는데 좀 봐달라고 했다. 또 내가 하는 소리가, 사장님의 지시 사항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고 했다. 오늘이 영업하는 입장에서 수금에 신경 써야 하는 말일이라는 건 이해가 가지만, 일정이 빡빡한 나로서는 남 과장의 자세가 서운했다. 그의 목소리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고마운 감정 보다는 말일의 시간적인 압박감에 약간 짜증이 섞여 있는 듯 했다.
다음 주에 견적을 결재 받으려면 나는 견적서를 5월 4일 화요일 오전에는 손에 쥐어야 한다. 그러려면 업체에서는 하루나 이틀 밖에 시간이 없다. 모두 서둘러야 한다.
팀장님께서 다음 주에 사장님께 보고를 못하면 또 찍힌다. 작년 장마철에 터진 모터 고장 사고 때문에 올해 연봉이 제자리셨는데… 우리 팀원들을 잘 챙겨 주시는 팀장님의 시무룩해진 얼굴을 또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하이볼티지사 성정열 과정한테 견적을 부탁하자!)
모터 부분에서 풀파워사하고 경쟁관계에 있는 HT사의 성정열 과장. 모터를 납품할 기회를 달라고 매번 찾아올 때마다 항상 웃었던 그의 얼굴이 시무룩해진 팀장님의 얼굴과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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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금요일. 날씨 하루 종일 비.
오늘은 마감일. 수금을 맞추고 월 매출을 마쳐야 하는 날. 언제나 그랬듯이 말일은 죽음의 날이다. 무지 바쁘다. 오전에 여기저기 전화해서 입금을 확인해야 하고, 오후에는 어음을 받으러 뛰어 나가야 한다.
“김 대리! 너 빨리 나가봐, 늦겠어! 그 사장 외근 나가기 전에 가서 다 받아오란 말이야.”
“아직 전화할 데가 많은데요 팀장님.”
“팀장님, 그랜드중공업에서는 경리부장이 상을 당해서 결재가 안된다고 하는데요?”
“뭐야! 이런.”
“강 주임. 우리 입금통장 다 나와 있는 것 좀 갖다 줘.”
“저번에 드렸었잖아요.”
“야, 거기 있잖아 임마. 4단 파일 위에. 으그...”
“성 과장님~. 3번 전화 받으세요.”
난리다 난리.
“네, 정성을 다하는 하이볼티지 수주팀의 성정열입니다.”
“성 과장님, 메머드조선입니다.”
메머드조선의 변 과장은 말일이 영업사원한테 어떤 날인지 모르는가 보다. 아니 알 필요도 없지, 갑이니까. 말일에 자기네 조선소로 와달라고 한다. 나보고 수금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비가 억수로 오고 있는데 말이다.
“다음 주에 보고라구요? 변 과장님, 중간에 어린이날이 끼었잖아요.”
오늘이 아니면 시간상으로 불가능하다. 수리조선소의 특성상 시간은 곧 매출이고 수익이다. 모터 고장으로 작업시간을 늘어지면 손해가 막심하다. 서두를 만한 이유가 된다. 오늘 내가 수금할 일은 팀장님께 말씀드려서 과장한테 떠 맡기고 주차장으로 뛰어 나갔다. 비 속에서 차를 몰았다.
앞 유리를 때리는 비 소리가 윈도우 와이퍼에 의해 지워지는 소리를 들으며 변 과장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뭔가 우리 쪽에 유리할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풀파워한테 항상 밀렸었는데, 아니 우리는 그들의 들러리나 다름 없었는데, 이번엔 내 예감이 좋았다. 풀파워와 장기 거래에서 오는 어떤 문제점들이 내 차의 윈도우 와이퍼에 의해 좌우로 닦여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메머드조선의 모터를 전부 점검하고 교체할 게 있으면 전부 다라도 교체한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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