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16 오후 4:29:51 조회(6762)
제목  하나에서 열까지
주차용 승강기가 또 고장이 났다. 2번 승강기 문이 아예 열리지 않아 입주사의 승용차들이 1번 승강기만을 이용할 수 밖에 없어서 출근 시간에 주차장 입구가 차들로 북새통이었다.

“아니, 이거 불편한 건 둘째치고 불안해서 지하 주차장에 차 대겠어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 가려고 기다리는 입주사 직원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아예 차에 키를 꽂아 둘 테니 알아서 주차해 달라고 하고는 사무실로 올라가 버리는 직원도 있었다.
두 달 전에는 문이 열리지 않아 그 안에 차하고 사람이 4시간이나 갇혀 있었다. 승강기 안에 갇혀 있었던 그 직원을 볼 때마다 미안해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도망가고만 싶었는데… 정말 신경질 난다. 2번 승강기는 항상 말썽이다.

지하 주차장 차량용 승강기의 보증수리 기간이 한참 지난 건 이제 문제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걸 설치한 회사가 부도가 나서 고장 날 때 마다 수리를 이 회사 저 회사에 맡기다 보니 근본적인 수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고장이 더 잦은 것 같다. 남의 회사에서 설치한 주차 시스템이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지 눈에 보이는 문제만 고치는 것 같다.

지난 번에 수리를 했던 회사에 연락을 했다. 다른 회사보다는 그래도 한 번 고쳤던 경험이 있고, 또 그 회사의 직원이 고쳤을 때 완벽하게 고치지 못한 잘못도 있을 것 같아서 빨리 와서 고쳐 달라고 했다.

전화한 지 1시간이 되어 파킹인빌딩사의 영업사원이 기술자 두 명을 데리고 도착했다.

“아니 지난 번에 어떻게 고쳤길래 또 고장이 났어!”

오전내내 입주사 직원들의 원성을 들었던 나는 그 세 사람한테 화풀이를 했다.

“부장님, 이 승강기는 저희 회사에서 설치한 게 아닌데 저희한테 뭐라고 그러시면 안되죠. 저번에도 제가 말씀 드렸잖습니까, 이 승강기는 아예 다 뜯어내고 다시 리모델링하는 게 좋다구요.”

내가 한 말이 기분이 나빴는지 영업사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에 왔을 때에는 자기네 회사랑 거래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는지 활짝 웃는 얼굴로 대하더니 이번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아니… 자네 왜 나한테 짜증을 내고 그러는가? 자네 회사에서 고쳤던 게 또 고장이 났으니 자네 회사도 책임이 있지 않나?”

“짜증 내는 게 아니구요, 고친 게 또 고장 났으면 저희가 와서 고쳐 드리는 건 맞지만 꼭 제가 따라와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전 기술자가 아니고 영업사원인데, 이 승강기가 고장 날 때 마다 제가 입회해야 한다면 저는 언제 영업합니까, 부장님. 제 입장도 생각해 주셔야지요.”

이건 전에 했던 말하고 영 다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시라고, 끝까지 책임을 지고 관리해 드리겠다고 말하던 그 입에서 이제 장삿속 말씨에 항의하는 말투. 기술자들도 전에 왔던 기술자들이 아니다. 전에 왔던 기술자 두 명도 통성명을 하지 않아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대략 기억이 난다.

“좋아, 그건 그렇고, 전에 왔던 기사분들이 아닌데?”

“아니, 부장님도… 기술자가 바뀌면 좀 어떻습니까? 타워는 15층에 있던가요, 부장님?”

점심 식사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2번 승강기가 ‘위~잉’하는 소리를 내며 움직이게 되었다. 일단 승강기 문이 닫히고 지하로 내려가는 승강기를 보니까 또 고장이야 나겠지만 고쳤다싶은 안도감이 긴장이 풀어졌는지 아직 점심을 못 먹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아이구, 수고하셨습니다.”
“부장님, 이번 고장은 모터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점검을 해 봤는데 가장 큰 문제는 아마 모터의 용량부족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 고쳤습니까?”
“다 고친 건 아니구요… 응급조치로 안정기를 바꾸고, 롤러에 윤활유를 더 칠했고…”
“아직 사용 못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 2번 승강기는 당분간은 소형 승용차만 이용하도록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아… 강 대리는 어디 있죠?”
기술자들이 번갈아 가며 하는 소리가 이해가 안 되고 답답하기만 해서 그래도 말은 잘하는 영업사원 강 대리를 찾았다. 승강기가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에 그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그를 찾았다.
“아까 갔는데요…”
“가다뇨 어딜?”
“논현동 4거리에 강대리 거래처 빌딩이 있거든요. 거기 관리부장님하고 점심 약속이 있었어요…”

황당하다. 나한테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강 대리.

‘아무리 선약이 있어도 그렇지. 난 지금 점심이 뭐야, 몇 일 후면 또 고장 날 승강기 앞에 서 있는데…’

나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보여준 그의 첫인상, 그 한 마디 한 마디 내 비위를 맞추려던 말들하고는 영 딴 판으로 변해 버린, 아니 어쩌면 이게 그의 본래 모습일 꺼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하나에서 열까지 도대체가… 안되겠다, 다른 데를 알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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