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 발탁은 현대차 그룹에서 파격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 사장은 제주도에서 현대자동차 영업본부장을 지낸 영업통이다. 건설에는 문외한이지만 김 사장의 영업 능력이면 아파트 세일에도 문제가 없다고 본 것이다.
사실 정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동차 국내 영업 출신들을 요직에 기용하고 있다. 정 회장은 내수 불황이 오기 전인 2003년 이전만 해도 “수출이 현대차를 이끈다”며 수출에 주로 신경써 왔다. 하지만 내수가 침체된 지난해부터는 총무·노무·홍보·해외영업 담당 임원으로 국내 영업본부 출신들을 잇따라 기용했다. 불황기에는 역시 영업 능력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불황에 각광받는 영업통이런 추세는 삼성과 LG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이공계 출신을 우대해 온 삼성전자는 올해 인사에서 영업통 3명을 사장으로 전진 배치했다. 생활가전총괄 사장에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현봉 사장을 임명하고 외국 영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한 오동진 사장과 장창덕 부사장을 각각 북미총괄 사장과 국내 영업사업부 사령탑에 임명한 것. 이미 디지털미디어 총괄인 최지성 사장 등이 영업통임을 감안한다면 연구개발(R&D)을 중시하는 삼성전자에서도 영업맨의 대접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까지 영업통 사장이 한 명도 없었던 LG전자도 2005년 정기인사에서 대표적인 외국 영업통으로 손꼽히는 김광로 서남아지역 대표 겸 인도법인장과 안명규 북미총괄 대표를 각각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권에서도 최근 영업통들이 중용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과 올 초에 걸쳐 단행된 은행 임원 인사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나은행의 신임 임원 7명 가운데 6명이 일선 지역본부장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지난해 말 7명의 임원(부행장 4명, 단장 3명)을 임명한 우리은행도 카드, 영업지원, 주택금융, 종합금융 등 영업 관련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
신한은행도 3명의 신임 부행장 중 2명이 영업통이다. 그 외 다른 은행들에서도 영업통이 중용됐다. 일부 금융권은 영업부서를 거치지 않으면 아예 임원 승진을 못하게 하고 있다. 웅진그룹 등 세일즈가 강한 그룹도 영업 경력이 없으면 아예 임원 승진이 불가능하다.
종합상사가 한국 수출의 주역을 담당했던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영업직은 ‘샐러리맨의 꽃’으로 불렸다. 당시 종합상사 영업직은 대학생들의 입사 1순위로 꼽힐 만큼 선망의 대상이었다. 상사맨들은 전 세계를 돌며 한국 제품을 세일즈하기에 바빴고 그 덕에 한국은 큰 기술과 자본 없이도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러나 90년대 접어들면서 기획과 재무·연구개발 직종이 기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자 영업직에 대한 대우가 변하기 시작했다. 양적 성장을 지속해 온 기업들이 이제 내실을 다지고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다 일하기 힘들고 승진하기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영업직은 기피 부서로 전락했다. 영업직 발령은 좌천이나 다름 없었다. 세일즈를 고도의 전문직이라기보다는 ‘몸으로 때우면 되는 일’ 정도로 폄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급기야 97년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이번에는 재무부서가 기업의 핵심 부서로 등장했다.
하지만 지난 2~3년간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봉제가 확산되고 실적이 중시되면서 영업통이 다시 각광받는 시대가 왔다.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 속속 들어오면서 경쟁 환경이 치열해지고, 세계적인 공급 과잉 시대로 접어들며 수요자 중심으로 시장이 바뀌면서 세일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특히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푸르덴셜을 중심으로 한 외국계 보험사 등이 포화상태로 알려졌던 한국 보험시장에 ‘종신보험’이라는 상품으로 돌풍을 일으키자 너도나도 세일즈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성공한 세일즈맨에게 고속 승진과 고액의 성과급이 주어지면서 영업직을 보는 취업자들의 눈도 달라지고 있다.
4년제 대졸자를 대상으로 보험 세일즈맨을 모집하는 푸르덴셜생명은 “과거에 비해 리크루팅 후보가 훨씬 풍부해졌다”면서 “한국 진출 초기에는 대졸자를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은행 등 금융권과 일반 기업체의 관리직에서도 보험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신입사원을 채용한 SK텔레콤은 전체 인력 중 30%가 영업 부문을 지원해 경쟁률이 100대1을 넘었다. 지난해 말 신입사원을 채용한 LG화학도 영업직 지원율이 29%로 2003년보다 6%포인트나 늘어났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영업직은 회사 업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고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입사원 사이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 관련직에 지원하는 구직자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취업 전문업체 스카우트에 따르면 2004년 영업 관련직 채용 공고에 지원한 구직자 수는 총 40만8528명으로 2003년 28만9540명에 비해 무려 41.1%나 늘어났다.
이처럼 영업에 대한 인식이나 중요성이 과거와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영업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다. 특히 ‘억대 연봉’의 신화는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자신만의 노하우 있어야 영업달인국내 각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는 세일즈맨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끊임없는 성실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외에 “기본적으로는 세일즈에 대한 열정과 분명한 목표의식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공한 세일즈맨들은 한결같이 이런 기본기에 자기만의 스타일과 노하우를 접목했다. 이들은 상품보다 고객을 더 깊이 분석하고, 수많은 고객들의 네트워크 중심에 섰다.
또 세일즈에 실패했더라도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설명하기도 한다. 고객에게 설명하기보다 고객의 얘기를 열심히 듣는 역발상도 있었다. 고객이 말하기 전에 미리 원하는 것을 해준다는 믿기 어려운 능력도 어느 성공한 세일즈맨은 갖추고 있었다. 세일즈 달인들은 이런 자신만의 노하우로 불황을 돌파하고 최고의 자리에 섰다. 억대 연봉이나 영업왕 타이틀은 이런 노력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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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