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고대 중국의 요 임금이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을 깨우치기 위해 고안했다는 말도 있다. 바둑은 그만큼 까마득한 요순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얘기다.
우리도 바둑을 좋아했다. 선비들은 모난 바둑판 위에서 둥근 바둑돌이 움직이는 이치를 연구하기도 했다. 신선노름으로는 바둑이 최고였다.
하지만 간단한 것이라도 걸고 두는 내기바둑이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 태종 때 정승 남재는 묵사라는 절의 스님과 내기바둑을 자주 두었다고 한다. 지는 쪽에서 옷을 하나씩 벗는 내기였다. 스님은 바둑을 둘 때마다 지고 말았다. 매번 옷을 벗어야 했다. 정승은 그 때마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반대급부’가 있었다. 절에 많은 쌀과 음식물을 시주했던 것이다. 바둑 몇 판 져주고 절의 살림살이가 두둑해졌으니 괜찮은 내기바둑이었을 것이다.
임금도 내기바둑을 즐겼다. 세조는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둑을 둘 때도 악착같았다. 대신들과 말 3마리를 걸고 내기바둑을 두기도 했다.
큰판도 있었다. 고려 때 하두강이라는 중국상인이 있었다. 고려에서 장사를 해 떼돈을 번 갑부였다. 하두강은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미인을 발견한 뒤 일손을 놓고 말았다. 거의 상사병에 이르게 된 것이다. 수소문 끝에 왕호라는 사람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두강은 왕호에게 접근했다. 내기바둑을 두자고 제안했다. 이후 하두강은 수십 차례의 바둑을 모두 졌다. 많은 돈이 왕호에게 넘어갔다.
마침내 하두강은 화가 난 척하며 전 재산을 걸겠다고 나섰다. 왕호에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걸라고 요구했다. 왕호는 걸 수 있는 것은 아내뿐이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 하두강은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를 걸고 바둑을 두자고 했다. 증서까지 작성했다. 왕호는 하두강의 음모를 눈치챘지만 아내를 잃고 말았다. 하두강은 바둑의 고수였던 것이다.
백제의 개로왕이 고구려 첩자 스님 도림과 바둑을 두다가 나라를 망친 것은 유명하다. 바둑에 빠지다보니 적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내기바둑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투전(投錢)의 역사는 훨씬 짧다. 조선 후기인 숙종 때 장현이라는 역관이 중국의 노름을 고쳐서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투전은 엄청나게 유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투전에 빠지는 바람에 단속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투전꾼들은 모르는 사람의 상가에 문상객을 가장해서 모여 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 투전판에서 생긴 도박용어가 있다. ‘고주(孤注)’라는 말이다. 사전을 뒤져보면 “노름꾼이 나머지 돈을 다 걸고 단번에 승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요즈음 정치판에서 유행하는 ‘올인’과 대단히 비슷한 용어다.
지금 정치판에서는 이 ‘고주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보법’을 둘러싼 작전이다. 야당 지도자는 “모든 것을 걸고 국보법 폐지를 막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사회 원로들이 거들고 나섰다. 여당도 대통령의 TV 대담 이후 국보법을 폐지하기로 당론을 확정했다. 여가 고주 작전에 돌입하자 야도 작전을 선언한 것이다.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모든 것’을 걸고 고주 작전에 들어갔다는 것은 ‘막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 이상의 ‘판’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나라 경제를 위해 여야가 고주 작전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년에는 경제가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서민이 당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추석이다. 추석을 앞두고 튀어 오르는 물가를 원망하고 있다. 정치판이 고주 작전을 하는 동안 서민생활은 막판으로 몰리고 있다. 정작 고주 작전을 해야할 사람들은 서민이다. [김영인 논설위원] ykim@e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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