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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사원들의 닳은 구두 - 출처:한겨레신문 |
| 작성자 |
zidd |
뉴스투데이에 올라온 기산데 내용이 맘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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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구두를 신다가 뒤꿈치와 맞닿는 부분이 조금 접혀 있는 걸 발견했다. 전날 비가 내렸고, 구두는 비를 기억해 내고, 힘을 받지 못한 뒤축이 반 정도 꺾어졌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아버지가 신던 낡은 구두는 모두 내 차지였다. 시대를 무시한 유행 감각을 한껏 빛내는 그 구두를 질끈 꺾어 신고, 학교를 다녔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부지런히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졸업하고 나서 그 습관은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지 3개월이 채 안되던 때였다. 에어컨을 튼 버스는 시원했는데, 발바닥은 계속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무심코 구두 밑창을 들어 보니 반으로 갈라져서 조금씩 너덜거리고 있었다. 외근을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발바닥이 따끔거릴 때마다 일을 참 열심히 했구나, 했던 만족감의 정체는 여기에 있었다. 비가 고인 곳은 되도록 돌아서 갔고, 두꺼운 밑창을 하나 더 깔았다. 갈라진 틈으로 물은 계속 스며들었지만 덜거덕거리면서 한 달을 더 신었다. 더 질기고 따끔거리지 않는 구두는 편했지만 아내에게는 계속 미안했다.
바쁜 날은 한강다리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한남대교로 신나게 북진했다가 강바람에 머리 휘날리며 마포대교를 지나 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를 타고 양화대교를 급하게 건너가던 중이었다. “바쁘신가 봐요.” 약속시간에 쫓겨 얼굴이 벌게진 내 얼굴을 보며 택시기사가 물었다. “네, 좀 그렇습니다.” 영업을 뛰는 내 이력과 그분의 살아온 인생 얘기를 주고받다가 그분이 우스갯소리라고 혼잣말로 하는 한마디가 가슴에 꽂혔다. “택시기사를 한다면 적어도 서울시내 맨홀 뚜껑이 어디에 몇개 있고, 어느 동네 요철은 몇개가 튀어나왔는지는 알아야 명함을 내밀지, 허허허.”
“구두 많이 준비해놔요.” 인사말 대신 던진 그 기사 분과의 만남 이후로 여전히 내 구두는 한 켤레. 대신 오래전 잊고 있던 습관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사무를 볼 때, 구두를 반쯤 벗어 놓는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은데, 잠깐씩 움직일 때 고쳐신는 것이 귀찮아 그냥 모둠발로 왔다갔다하다 보니 구두가 조금씩 접혀져 있는 것이다. 더운 날엔 발 냄새도 모락모락 나기도 해서 아차 싶을 때가 종종 있기도 하다.
얼마 전 교육을 받느라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교육, 밥, 테스트로 이어지는 나날이 1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다보니 구두를 반쯤 벗어놓고 무심코 다른 사람들 발치를 보게 되었다. 놀라웠던 건 다들 구두가 반쯤 벗겨져 있었던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휴식시간, 한마디씩 거든다. “많이 활동하니까 아무래도 땀 식히려면 자주 벗어놔야돼.” “발냄새 많이 나는 순서대로 보너스 줘야 된다니까.” “영업 뛰는 사람이 구두를 오래 신는 건 그건 일을 안한다는 증거지.” 다들 대동소이하다.
구두를 보니 뒤축이 조금씩 닳고 있다. 더 많이 닳아야 한다. 땀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냄새를 식히려면 더 자주 벗어 놓을 수밖에. 열심히 뛰는 사람의 냄새라는 걸, 열심히 사는 사람의 구두라는 걸 뽐내고 싶다. 도로 위에 바삐 오가는 수많은 구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함께 위로받고 싶다.
안민규/보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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