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자율성을 잃은 법률가, '검사'의 초상 |
| 작성자 |
강가딘 |
대통령과 검사의 토론회에 나타난 검찰개혁의 방향
김인회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회를 보고 당혹감과 참담함을 느끼지 않은 국민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변호사로서 또 평소 검찰개혁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민변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토론회를 보면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다만 저는 같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초기에 같은 법률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는 검찰 개혁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 토론회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번 토론의 주체는 평검사였습니다. 간부검사가 아닙니다. 검찰의 문제가 단순히 간부들의 문제가 아닌 전체 검사의 문제이며 따라서 인적청산과 함께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검찰개혁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논의에 앞서 이번 토론회에서 보여준 검찰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보여집니다. 다만, 이미 유시민 선생님께서 일정 정도 분석하셨기 때문에 유시민 선생님의 의견과 중복되지 않는 정도에서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9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을 배석시킨 가운데 전국 평검사들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첫째, 개혁 혹은 변화에 대한 저항
오히려 정확한 표현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겠습니다. 토론회 과정에서 검사들이 주장한 내용은 단 두 개, '인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인사를 할 것',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줄 것'이었습니다.
한 검사는 검찰총장의 인사권이 아니라 인사제청권이라고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사정을 안다면 그것이 인사권과 다름 없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쟁점이 된 것은 바로 강금실 법무부장관의 인사제청권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행 검찰청법상 검찰인사위원회는 법무부장관의 자문기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검사들로 구성되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아무런 권한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검찰인사위원회 역사상 중요한 권한을 행사한 적도 없었고 사실상 검사들도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검사들은 지금까지 인사위원회를 경유하지 않고 또 검찰총장이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하여 항명을 하든지 아니면 저항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처럼 말입니다. 만일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그렇게 중요하고 여기에서 인사의 독립이 핵심 과제라고 한다면 검찰 역사상 이를 주장해본 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검찰이 조직적으로 과연 법무부장관의 인사에 대하여 저항하고 항명한 적이 있습니까. 평검사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최소한 그 주장이 검찰의 숙원사업이어야 합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민변은 검찰 인사위원회의 지위 격상과 공정한 인사를 이미 구두가 아니라 문건으로 1990년대 말부터 주장하여 왔습니다. 최소한 5년 정도 주장해온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검찰은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현직에 있는 검사들은 바빠서 생각을 못해봤다고 하니 용서해줄 수도 있겠지만 검찰 상층부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검찰 주장은 검찰의 숙원사업이 아닙니다. 다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일 뿐입니다. 우리끼리 잘 해 왔는데 웬 참견이냐 하는 투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자신들끼리 잘 해온 것도 아니지만...
둘째, 조직이기주의
검찰개혁의 핵심은 정치적인 독립이 아닙니다. 이 점은 제가 변호사이기 때문에 믿으셔도 됩니다. 검찰 개혁의 핵심은 지나치게 집중되고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키고 견제, 감시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검찰권력의 분산과 견제, 감시라는 큰 틀에 검찰의 정치적 독립, 중립이 있는 것입니다.
검찰 권력의 비대화를 보여주는 사례는 재정신청제도입니다. 재정신청제도란 검사가 수사를 하고도 불기소결정을 하였을 때 그 불기소결정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하여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기소편의주의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불기소결정을 하여도 이에 대한 견제책으로 마땅한 것이 없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1954년 제정 형사소송법은 모든 범죄에 대한 불기소결정에 대한 재정신청제도를 보장하였습니다. 즉, 검사의 불기소결정에 대하여 고소, 고발인이 그 부당성을 법원에 호소할 제도를 보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1973년 유신정권때 공무원의 3개 범죄(직권남용, 불법체포감금, 폭행가혹행위)로 축소됩니다. 그만큼 검찰의 권한이 커진 것이지요. 그런데 유신정권이 없어졌다면 애초의 제정 형사소송법으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재정신청 대상은 3개 범죄뿐입니다. 만일 검찰이 견제와 감시를 받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를 환원시켰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검찰의 권한은 계속하여 집중되고 강화되어 온 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원칙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구체적으로는 즉결심판과 같이 경미한 사건의 경우에는 검찰의 권한에서 이탈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경미한 부분이어서 특별한 영향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검찰개혁의 핵심은 비대해진 검찰권력을 어떻게 분산하고 견제, 감시할 것인가입니다. 물론 정치적인 독립이 이루어지면 검찰권력은 약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치권에 집중되었던 비판이 모두 검찰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검찰 스스로 국민들 앞에서 떳떳해야 하므로 권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독립은 여전히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렇게 강대한 권력을 가진 검찰이 이제는 인사권까지 달라고 합니다. 인사제청권이라고 표현하지만 검찰총장의 인사제청권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유명무실하게 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입니다. 개혁의 대상으로서 자중해야 할 검사들이 자신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로 또 다른 권한을 챙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관료들의 조직이기주의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셋째, 상하일체주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독자들은 토론회 과정에서 평검사들이 검찰간부들과 이해 관계를 같이 하는 부분이 매우 이상하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과도한 조직중심주의, 조직충성주의를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검찰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검사동일체원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검사동일체원칙은 전적으로 잘못된 원칙으로서 반드시 검찰청법 개정 과정에서 개정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원래 사법업무는 조직이나 상명하복, 일체주의 등과 같은 군사문화 혹은 관료문화와 친하지 않는 업무입니다. 사법업무란 사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하여 법률을 적용하여 판단을 하는 작용을 말합니다. 사법업무 담당자 중 가장 대표적인 직업이 법관입니다. 그런데 법관은 반드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합니다(헌법 제103조). 여기에서 강조점은 독립성입니다.
검사 역시 법무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있지 않은 동안, 즉 검사 고유의 업무인 수사와 공소유지를 하는 동안은 사법관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독립성이 핵심입니다(법무행정인 경우에는 일반 행정조직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검찰은 이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법업무에 대해서까지 상명하복체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검사는 준사법기관으로서 인권옹호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명하복, 검사동일체원칙, 조직중심주의, 이것을 깨야 합니다. 이것이 있는 이상 검사들은 사법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한 검사가 민변 의견을 제시하면서 왜 민변 의견을 따르지 않느냐고 강금실 법무부장관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미안하지만 민변에는 민변동일체원칙이 없습니다. 소수의견을 얼마든지 발표할 수 있고 그 소수의견을 침해하지도 않습니다. 철저하게 동일체 원칙에 젖어 있으니 민변같은 자율적인 조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검사들이 그렇게 옹호하는 검사동일체원칙은 검사조직 옹호만을 위해서 사용되면 안됩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왜 검사동일체원칙을 적용하지 않습니까. 진정한 동일체원칙은 공과를 모두 같이 책임지는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요. 판단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넷째, 불철저한 공무원 의식
유시민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자기들만의 권위의식과 자기들만의 책임의식에 갇힌 검사들은 공무원 의식마저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힘들게 일하고 있답니다. 과연 이것이 검찰개혁이라는 국가대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할 얘기인지는 차치하더라도 검사들은 이러한 얘기를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첫째,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것이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루 10시간 심지어 14시간씩 일하면서도 겨우 생활하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검사들만큼 일하면서 검사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 수두룩합니다.
둘째, 공무원 중에서 개인적으로 힘들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소방관들입니다. 검사들이 소방관들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더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까. 이 부분에 관한 한 검사들과 소방관들의 토론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셋째, 검사들이 힘든 이유는 권한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편하려면 권한을 나눠주십시오.
넷째, 고위직 공무원일수록 일이 힘든다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밤새웠다고 그런 얘기합니까. 자신이 원해서 국민의 종복이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 아닙니까.
다섯째, 어려움이 있으면 평검사회의나 직능단체를 구성하여 권리를 주장하십시오. 민변에서 고문변호사 할 변호사들 많이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무보수로 고문변호사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공무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의식마저도 저버리는 검사들의 모습에 할 말을 잊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자율성과 독립성의 상실
이상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왜 저와 이렇게까지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고민해봅니다. 일단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민변에서 놀고 검사들은 검찰청에서 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조직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법률가에게 있어서 핵심은 자율성, 독립성이라고 봅니다. 두 조직의 차이는 검찰은 검사동일체원칙이 있는데 반하여 민변은 그러한 원칙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개인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조직에 앞서서 개인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조직과 조직 뒤에 숨어서 개인은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조직의 차이가 그것일 것입니다.
더 이상 조직이 개인을 보호해주는 시대는 없습니다. 특히 사법업무에 종사하는 직종인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홀로 독립하여 고독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검사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머리로 자신의 문제를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조직이 다 해결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은 검사들 개인의 역량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선배들이 당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니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수파괴, 이것이 말하는 의미는 바로 독립성입니다. 이것은 검사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것입니다. 항상 조직이 자신들을 보호해 왔고 또 자신들은 조직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직이라는 외피를 벗는 순간 검사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자신의 이야기인 양 말해야 하니 얼마나 당혹스럽겠습니까.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한 순간 법률가는 단순히 법률기술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번에 국민들이 확인한 검사의 모습은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법률가의 모습이 아니라 단순히 특정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법률기술자들의 모습이었을 뿐입니다.
이상과 같은 분석은 앞으로 검찰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위에서 보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과제입니다. 앞으로 검찰개혁 나아가 사법개혁 방향에 대하여 6회 내지 8회 정도의 기획연재기사를 마련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시민의 신문>의 요청에 의하여 작성하여 송부한 기사를 새롭게 추가 작성한 것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작성하였으나 기본 내용은 동일합니다. 단, 이 글은 민변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2003/03/13 오전 12:06
ⓒ 2003 OhmyNews
김인회 기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로, 현재 민변에서 수석사무차장과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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