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사태라는 국가적 위기 와중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이 5년의 임기를 마치고 25일 새정부에 바통을 넘긴다. 김대중 대통령은 5년동안 엄청난 국가적 빚과 개인부채, 아들과 정권핵심의 부패, 검찰과 공권력의 만신창이, 남남 및 지역갈등 심화 등 허물을 남겼지만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정상회담 실현이라는 업적도 남겼다. /편집자주
<사회분야>
국민의 정부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사회부문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보다는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일부 분야에서는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약분업은 논란끝에 지난 2000년 도입됐으나 의료계 파업 등 파행적 운영이 계속돼 환자들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고 교원정년단축은 교원수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단행돼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트렸다. 국민의 정부는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사회부문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보다는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일부 분야에서는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약분업은 논란끝에 지난 2000년 도입됐으나 의료계 파업 등 파행적 운영이 계속돼 환자들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고 교원정년단축은 교원수급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단행돼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트렸다. 이같은 국민의 정부에서의 정책혼선은 새 정부가 뚜렷한 정책목표를 설정하는 한편 국민적인 합의도출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반면교사(反面敎唆)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육분야=김대중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교육개혁은 교육본질을 중시한 장기적인 교육정책 수립보다는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데다 정치-경제논리에 치우쳐 개혁의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교육현장의 혼란만을 가중시켰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공교육을 활성화하고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공약한 교육재정 6% 확보가 IMF상황 등으로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이뤄지지 않아 공교육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교육의 질이 교육투자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는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됐고 지나친 사교육비 의존에 따른 학교교육 붕괴를 우려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대표적인 교육개혁정책으로 추진한 교원정년 단축은 교원수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추진, 교원부족사태가 빚어져 퇴직교사를 재임용하고 기간제 교사를 대거 양성하는 등 정책실패로 국가의 재정부담만 가중시켰을 뿐 아니라 교원을 개혁대상으로 간주해 교원사기를 떨어뜨렸다. 여기에다 교원성과급제는 교사들의 반발로 교원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발하는 데 실패했다.
제7차 교육과정과 교육여건개선사업도 정책당국과 학교현장의 괴리로 각종 부작용을 낳았고, BK21사업도 졸속으로 추진해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지식의 창출과 활용이 주된 국가경쟁력으로 인식,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을 바꾸고 부총리급으로 격상시켜 교육을 국가적인 중요한 의제로 인식케 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로 평가되고 있다.
◆노동분야=국민의 정부는 집권 5년동안 노-사-정 협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구성, 운영해오면서 노사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했지만 주5일 근무제를 포함한 각종 개혁정책들이 정치권 등의 '힘의 논리'에 밀려 노사갈등만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김대중 정부가 집권기간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 온 주5일근무제는 다수당인 한나라당과 노-사의 반발에 부딪혀 입법마저 이뤄지지 못하고 새 정부로 공이 넘어갔다.
외환위기(IMF) 이후 구조조정과정에서 파업 등으로 홍역을 치른 기업체들이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면서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는 등 사회불평등을 초래했다.
임금체불 인권침해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외국인 근로자 보호를 위해 산업연수생제 개선, 취업관리제 등을 도입했지만 재계의 반발로 고용허가제 등이 수반되지 않아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는 평가다.
노동기본권 확대를 부르짖어온 국민의 정부는 집권기간 동안 교원노조 합법화만 이뤄냈을 뿐 사상 초유의 파업사태를 빚은 공무원 노조문제에 대해선 차기정부 과제로 넘겼다.
그러나 출범 초기 IMF 환란 극복과 함께 최대현안이었던 실업문제와 관련해 최고 7.0%에 달했던 실업률이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3.0%로 크게 낮아진 것이 성과로 꼽힌다.
고용보험의 경우도 98년 10월부터 전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됐으며 이에 따라 고용보험 가입자수는 2002년엔 710만명에 이르는 등 근로자의 복지를 증진시켰다는 평가다.
◆복지분야='생산적 복지'를 목표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고 국민연금 적용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하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지만 결국 의약분업에 대한 보완책과 지역-직장간 건강보험 통합문제 등 산적한 과제를 차기 정부에 남기게 됐다.
이 때문에 DJ정부가 국민의 복지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자평을 내리며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고 있는 의료-복지분야도 첫걸음을 뗐지만 갈 길이 많이 남은 '반쪽사업'이 대부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DJ정부는 1999년 4월부터 국민연금 적용대상을 전국민으로 확대했고, 이 결과로 연금 수혜자도 98년 20만명에서 2002년 93만명으로 늘어났다. 또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격적으로 도입함에 따라 최저생계비 이하 저소득층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약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한 의약분업은 이익집단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1년간 시행이 미뤄졌고 결국 2000년 도입된 후에도 의료계 파업 등 파행적 운영 때문에 환자들의 극심한 불편을 초래했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지역과 직장간의 건강보험 재정 통합의 경우 건보공단내 직장 건보 노조가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며 파업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한나라당도 건보재정 분리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히고 나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재정이 점차 고갈되고 있는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안도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박태해-문준식-김종수기자
<경제분야>
IMF사태라는 국가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경제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지상명제 속에서 외환위기 극복과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작업에 매달려 왔다. 이 때문에 'DJ노믹스'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도 시각과 관점에 따라 크게 엇갈리고 있다.
국민의 정부 5년은 경제지표상으로는 일단 합격점을 줄 수 있다. 정권 초기 고갈상태였던 외환보유액을 1000억달러 이상으로 늘리고, 마이너스 성장률을 최고 두자릿수까지 끌어올리면서 IMF 위기를 극복한 것은 가장 두드러진 성과로 꼽을 수 있다. 'DJ노믹스'는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 확대와 국가-가계부채 급증 등의 부작용을 남겼으며, 노동-공공부문 등의 미진한 개혁으로 각종 개혁정책도 미완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는 합격점=경제성장률과 외환보유액, 실업률 등 경제지표와 국민생활상의 변화 실적은 매우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다. 성장률은 외환위기 첫해인 1998년 마이너스 6.7%의 감속성장을 보였으나, 이듬해인 99년 10.9%의 두자리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2000년에도 9.3%의 높은 성장을 유지했다. 2001년과 지난해에는 세계경기 침체 속에서 각각 3%와 6%의 성장세를 보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98년 7.5%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0.8∼4.1% 수준에서 안정됐다.
IMF 관리체제에 따른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98년 6.8%까지 급등했던 실업률도 2000년 4.1%, 2001년 3.7%, 2002년 3% 등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다.
97년 82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던 경상수지는 98년 404억달러의 흑자로 반전된 데 이어 99년, 2000년에 각각 245억달러, 122억달러의 흑자를 나타내는 등 5년동안 총 900억달러에 육박하는 흑자기조를 유지했다. 덕분에 외국인투자가 늘어나면서 97년 말 204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도 2001년 1000억달러를 돌파(1028억달러)했으며, 지난해 말에는 1214억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이와 함께 IMF 지원자금 195억달러를 당초 계획보다 3년 정도 앞당긴 2001년 8월 전액 상환해 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국가신용등급 A등급을 회복했다.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IT(정보기술) 강국으로 탈바꿈시킨 점도 두드러진 성과라는 평가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작된 IT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육성정책은 벤처 만능주의에 따른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명실상부한 IT강국으로 변모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미완에 그친 경제개혁=DJ노믹스는 그러나 이러한 경제지표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구조의 틀과 개혁정책에서는 다소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금융개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1년 국가예산을 웃도는 막대한 규모의 공적자금에 대한 면밀한 상환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힌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부실을 털어내는 데는 작지 않은 성과를 올렸지만, 공적자금 조성 및 투입 과정에서 공정성과 효율성을 유지하지 못한데다 공적자금 상환부담을 고스란히 국민부담으로 넘긴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금융기관 지배구조 및 소유구조 개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외환위기 이후 DJ정부가 추진한 4대부문 구조개혁 중 노동-공공부문에 대한 개혁이 미진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했지만 포스코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했으며,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여전히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지만 빈부격차가 심화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하위 20% 계층에 대한 상위 20%계층의 소득비율은 98∼99년 급등한 이후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주택가격 폭등 등으로 늘어난 서민가계 부담도 줄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출범 초기 정부가 직접 개입해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정책과 수도권 팽창정책, 허술한 통상정책 등도 DJ정부 경제정책의 오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민병오기자 eagleeye@segye.com
<통일-외교분야>
김대중(金大中.DJ) 정부 5년은 금강산관광→남북정상회담→노벨평화상 수상→대북 비밀송금 파문→남북 육로연결 등 명암이 교차했다.
'햇볕정책'으로 명명된 대북 화해협력정책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5억달러의 비밀송금사건 등 무리한 대북 퍼주기로 얼룩졌다. 외교적으로는 다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북한 핵문제로 미국과 이견을 드러내는 등 한미간 갈등의 골은 깊이 패었다.DJ정부는 그래서 '뒷거래와이적정권'이라는냉담한평가아래쓸쓸하게퇴장하게됐고,새로출범하는노무현(盧武鉉)정부의대북-외교정책에큰부담을이월했다는지적이나오고있다.
◆통일분야=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 일행을 태운 비행기가 분단 반세기만에 서해직항로를 거쳐 평양공항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이는 전 세계의 시선을 한반도로 끌어모을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6.15공동선언'을 채택,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디딤돌을 마련했다.
5년간 남북회담은 무려 60차례나 열렸고 공동보도문 18건-합의서 22건이 채택됐다. 특히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가 연결되면서 비무장지대(DMZ) 철책과 지뢰가 일부 제거되고 군사 핫라인이 개설되는 등 군사적 신뢰 구축도 어느 정도 마련됐다.민간 차원의 인적-물적교류도 급증했다. 남북교역 규모가 98년 2억달러에서 2000-2001년 4억달러, 2002년에는 6억4000만달러로 늘었다. 6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6000여명이 만났고, 1만2000여명이 생사를 확인했다. 방북자 수는 금강산 관광객 51만여명을 제외해도 3만8000여명으로 89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지침' 시행으로 방북이 허용된 이후 9년간 방북인원 2405명의 15.6배에 달했다.
◆외교분야=7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의 다자-정상-세일즈 외교는 활발하게 전개됐다. 2000년 10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에 한몫했다는 평가다.DJ정부가 5년간 효과적인 외교방식으로 활용한 것은 정상외교였다. 그는 재임기간 중 무려 58개국 외국정상의 방한을 포함, 135회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한미회담 10회, 한일회담 14회, 한중회담 10회, 한러회담 5회 등 한반도 주변국과의 정상회담은 눈에 띄었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태평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회의 참석도 11회로 나타났다.하지만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간의 인식차는 극복해야 할 주요 현안으로 떠올랐다.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고수하는 DJ정부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미국 사이에 적절한 한미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국간의 갈등은 주한미군 지위 변경 문제로까지 발전했고, 한미간 불편한 관계는 노 정부로까지 계속될 양상이다.
/김기동기자 kidong@segye.com
<정치분야>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분야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2001년 11월8일 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나고 작년 4월 민주당 당적까지 버린 것은 잇단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는 등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탓으로 사상 처음 국민경선으로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는 정치실험을 하고 과거 현직 대통령이 임기후반기 후계자를 낙점하기 위해 벌어졌던 고질적 병폐인 후계자 논란 시비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치적 변화는 단지 외형적일 뿐 진정한 개혁을 의미하는 질적 변화는 결코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5년간 국민이 가장 기대하고 바랐던 낡은 정치청산과 정치개혁이란 절박한 과제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물러난다는 평을 받는다. 정치개혁 과제만 양산한 시기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따른 실질적 정권교체라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 과거 군사정부에서 소외된 호남출신 지도자가 정권을 장악한 만큼 지역주의 청산의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집권 초기 김 대통령은 경제사회분야 개혁과 함께 정치개혁을 내걸었다. 거대 야당 한나라당과 국정을 함께하는 '상생의 정치'구현을 비롯,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과 내각제 개헌, 작지만 강한 정부 구현,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의욕적 출발은 한나라당과의 협력이 절대적 요소였으나 한나라당은 김종필 국무총리 인준을 6개월동안 거부하고, 이에 맞서 여권은 야당 의원 빼오기와 야당대표에 대한 집요한 흔들기를 시도하면서 대결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정치개혁을 위한 여야 신뢰의 토대가 어그러지고 집권기간 내내 상생이 아니라 상살의 정치로 일관하는 불씨가 처음부터 지펴진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정치개혁이 실종하고 실패한 것은 김 대통령의 독선적 태도에 기인한다고 평가하는 정치분석가들이 많다. 청와대 한 인사는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면서 "누구도 개혁을 독점할 수는 없으며 이 부분에서 이회창 총재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줬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다른 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권력을 갖고 있었기에 개혁에 대한 철학과 정치적 의지만 있었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낳을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김 대통령을 당선시킨 DJP공동정부의 명분은 내각제 개헌이었으나 내각제 문제는 김 대통령과 김종필 총재의 밀실합의에 따라 흐지부지됐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명실공히 권력분산과 책임총리의 제도화를 모색한다는 차원이었으나, 대선 이후에는 변죽만 울린 채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내각제 개헌 공약은 실제 이행여부를 떠나 권력집중을 완화시킨다는 집권자의 의지가 전제돼야 논의가 가능했는데 김 대통령에겐 그런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는 평가가 많다. 이로 인해 총리는 '얼굴마담 총리'라는 역대정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청와대 비서실은 여전히 권력의 정점에 서서 과거 권위주의 행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은 각종 '게이트'를 양산하더니 급기야 김 대통령의 두 아들이 구속되는 폐해를 낳았다. 대전 법조비리, 옷로비 사건, 파업 유도 사건, 청와대의 비리연루와 잇단 검찰의 권위실추 등도 같은 맥락이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든다거나 정치자금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공약도 직업 공무원의 거센 반발과 일관성 부족으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DJ 정부를 움직인 인물 가운데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가장 부침이 심했다. 그는 실질적인 2인자로 불렸으며 한자리 얻으려면 권씨를 통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게이트'에 연루되고 민주당 소장파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권씨와 함께 동교동계 쌍벽을 이뤘던 한화갑 민주당 대표도 23일 당대표직을 사퇴함으로써 김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그의 가신중심의 동교동계는 정치뒷전으로 물러나게 됐다.
정권 초-중반 김 대통령 곁에 권씨가 있었다면 후반기에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김 대통령을 보좌했다. '부통령' '代통령'으로 불릴 만큼 DJ신임이 돈독했다. 김옥두 의원을 비롯,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중권씨와 그뒤를 이은 한광옥씨도 중심인물이었다.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는 김 대통령과 퇴진을 같이했다. 공동정부 한축이전 김종필 총재가 교체를 요구했지만 김 대통령이 거부, DJP결별의 원인을 제공했던 인물이다. 남북관계 40년을 정리하는 회고록을 집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2년8개월동안 최장수 경제수석을 지냈던 이기호 경제복지노동특보는 대학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박선숙 공보수석 조순용 정무수석 등은 '실업자'가 되거나 내년 총선준비를 할 계획이다. /정승욱기자
<사진>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이 비리혐의로 잇따라 구속돼 대통령 친-인척비리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차남 홍업씨(왼쪽)와 3남 홍걸씨가 기업체로부터 각종 이권청탁의 대가로 수십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지법으로 출두하는 모습./세계일보 자료사진
( 2003/02/23 1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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